장르 | 사진전 |
장소 | 307 스튜디오 |
관람일 | 2024. 12. 13 |
작가 | Chamiro, Araki Park, Dowoo Han |
예매링크 |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17108 |
🌏 지구산책을 다녀왔다. 세 명의 작가의 여행 기록이 사진으로 담겨 있었고, 지구를 산책하듯 작가들이 경험한 세계 곳곳을 사진을 통해 체험하자는 의도였다.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풍경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그 안에 녹아든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수의 작은 사진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사진전을 찾았다. 관람을 결정했던 건(=유입 경로) 배우로 활동 중인 한도우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고자였고, 각기 다른 작가의 협업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무드를 주는 감각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다. 여행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작가들이 각자의 여행지와 시선을 어떻게 담아냈는지를 주목하고자 했다.
307 스튜디오는 기존에는 촬영 스튜디오였다. 아마도 세 작가 중 한 명이 운영하고 있거나 짧은 기간만 대관했을 거라고 예상된다. 좁은 공간이라고 했지만 스튜디오로 활용하기엔 충분히 넓고 매력적인 공간이었다.(특히 5층) 4층에서 시작하는 정해진 동선을 안내받았고, 그 동선을 따라 보았던 개인적인 견해를 남긴다.
* 전시장 내 도슨트, 사진에 대한 설명 등이 없고 아티스트 토크에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의견은 작가의 의도와 상이할 수 있습니다. 관객의 개인적인 감상과 운영에 관한 평가라고 생각해 주세요.
* 모든 사진은 본인과 동행한 친구가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잘 찍지도 못할 뿐 더러 작품을 모두 촬영하지 않는 편이고 타이틀은 잘 기억하지 못해서 대략 남기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여는말
전시장에 도착하자 특이했던 게 캐치테이블 대기 순번이 있었다. 얼마나 인기가 많으면... 지스타에서도 도입하지 못한 캐치테이블이 여기 와있나 싶었다. 덕분에 편리하게 대기 순번을 받고, 전시장과 협업 중이면서 전시의 MD를 판매하고 있는 카페 다이버츄로 향했다. 아쉽게도 많은 MD들이 이미 전날에 완판된 상태였고, 그래도 엽서는 남아 각 작가의 작품들을 모두 구매할 수 있었다. 전시를 보고 나서는 바쁠 것 같아 미리 아라키 작가님께 싸인을 받았다. 어디 가서도 항상 작가님들 얼굴을 몰라서 역으로 성함을 여쭤보는 편인데(그림이 좀 웃기긴 하다...),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작품은 정말 좋아합니다...
4층은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고, 서문과 리셉션이 있는 바깥쪽 공간은 아라키 작가님, 안쪽 공간은 차미로 작가님이 주로 채웠다. 그리고 5층에 도우 작가님의 작품과 나머지 일부 작품들이 배치되었다. 서문을 지지하는 씨 스탠드와 빨간색 빨래집게가 주는 투박한 매력이 있었다.
Araki Park
아라키 작가님의 작품으로 시작된 전시는 LA로 향했다. OVATIO까지 보이는 이 사진의 출처는 LA 할리우드의 명예의 거리였다. 바닥에 핑크색 별이 박혀있는 그 거리를 모두 알 것이다. 가본 적은 없지만, OVATION이라는 단어를 걸 수 있는 공간이 어떤 건물일지 궁금했다. 자리에서 급하게 찾아보니 오베이션 엔터테인먼트 단지와 같은 곳이고, 구체적으로는 테라스 야외 공간까지 딸린 한 쇼핑센터였는데, 'OVATION SHOPPING MALL'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할리우드, 차이니스 씨어터 같이 문화의 아이콘과 같은 역동적인 공간 가운데 있는 곳이었다. 갑갑하게 둘러싸인 건물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야자수와 새하얀 간판만은 눈에 띄었다. 왜인지 시선이 계속 끌어 마지막으로 다시 보고 나와 엽서까지 다시 구매해서 돌아가게 되었다.
두 장의 사진이 연달아 배치되어 있었고, 같은 공간이었던 것 같다. 한 장은 어디 영화에나 나오는 바닷가 앞이었고, 보트가 정중앙에 있었다. 바다는 고요했는데 해변가를 채운 사람들은 소란스러웠다. 이 사진도 같은 공간의 다른 면인 것 같았다. 소년이 놀이기구에 매달려 있는데, 이곳의 바다는 아까 사람들보다도 더 소란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그런 바다보다는 소년에게 시선이 끌렸다. 이때부터 사진에서 역동성을 찾게 된 것 같다. 아라키 작가님의 작품들은 소란스러운 것들이 하나씩 보였다. 그 뒤 이어지는 보드를 타는 사람들에서 확신했다. 프레임에 갇힌 무브먼트는 보드를 탄 사람들처럼 흔들려도, 매달려 멈춰있는 소년에게도 여실히 드러났다. 사진 속 역동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작가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보트가 있는 사진을 엽서로 판매하셨어서 구매했는데, 매달린 소년이 너무 아른거려서 아쉽기도 했다.
아라키 작가님의 마지막 작품은 5층의 야외 공간에서 볼 수 있었다. 대낮에 방문하였더니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고, 그 가운에 어둠 속에서 보드를 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러한 형태도 콜라주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어둠 속에서 보드를 타는 듯한 (흑백이라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이 노을과 함께 배치되어 있으니, 노을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노을 아래로 잠식되어 내려가는 듯해 보이기도 하고. 이 사진의 배치가 가장 궁금했었던 것 같다. 아래서 아쉬웠던 부분을 이야기할 예정이지만, 도록도 없고 도슨트도 캡션에도 어떤 설명이 없어 작가들의 의도를 알기 어려웠던 전시였다. 관객이 작품이 궁금하다는 건 작가에게 굉장히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관객은 슬프다...😥
그리고 이 사진은 조금 더 해가 지는 어둠 속에서 보았으면 더욱 좋았겠다고 느낀다. 야외 공간이 있어 꽤 시간을 타는 전시였다.
Chamiro
4층의 안쪽부터 시작하는 차미로 작가님의 작품들은 꽤 다양하고 거대했다. 아마 세 작가님 중에 가장 경력이 오래되셨을 거라 예상이 되는데, 그만큼 노련하면서 도전적인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작가님은 우리를 차에도 태웠다가 음식도 먹여주었다.(?) 아마 모든 작품의 이름이 장소의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EARTH'라는 제목이었어서 기억에 남는다. 작은 주방 위에 놓인 음식들이 두서없이 붙어있었다. 투박한 빨래집게의 서문 페이퍼 뒤로 보여진 투박한 청 테이프가 마음에 들었다. 지구산책만 하려다가 밥도 든든히 먹어서 좋았다.
5층을 들어서자 환상과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유리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천장은 천이 내려와 환상적인 공간을 자아냈다. 4층과 반전되는 분위기였고 주로 흑백인 도우 작가의 작품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조금 더 차가운 느낌이었다. 한쪽 벽면부터 전시가 이어졌다.
도우 작가를 향한 팬심을 뒤로하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꼽는다면, 차미로 작가님의 프랑스 파리를 고르고 싶다. 아쉽게도 해가 많이 들어 작품을 온전히 담을 수가 없었는데, 실제로 보면 와 초록색이 사진이 된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초록색 들판에 초록색 나무, 심지어 남자가 앉아 있는 의자조차 초록색이다. 그리고 절묘하게 서 있는 새들 사이로 날아드는 새가 보였다. 이 사진을 연사하며 다양한 새의 형태가 보였을 텐데, 삼각형의 호선을 그리고 있는 새가 굉장히 민첩해 보여서 셀렉하지 않았을까 싶다. 초록으로 뒤덮인 파리의 한 물가 앞에서 초록색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과 동시에 세모난 새를 함께 담을 수 있다니... 공기조차 초록일 것 같다는 말이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이끼보다는 조금 더 숨통을 틀 수 있는 공기일 것 같다. 아마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일 것 같다.
차미로 작가님의 마지막 작품도 야외에서 보인다. 이 사진이 강렬했던 건 사진에 비친 건물의 형상이 그대로 드러나서, 마치 사람들이 건물 위를 헤엄치는 것처럼 보였다. 선명도가 굉장히 깔끔하게 인쇄돼서 색다른 시선까지 보여주었던 것 같다.
Dowoo Han
도우 작가님의 사진들은 정면 샷이 많이 없는 게, 햇빛이 너무 많이 들어 촬영이 어려웠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다 눈으로 담아 오려고 했던 것 같다. 동선상에서는 먼저 흑백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필름이라고 하니 흑백 필름을 사용한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이 사진은 누가 봐도 이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의 느낌을 가진 크기였다. 다른 흑백 사진들의 사이즈가 굉장히 작은 편이었는데, 이 사진만 프레임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자체적인 사이즈까지 크게 인화하였다. 위치는 아이슬랜드였는데, 이 사진이 어려웠던 건 공간을 추측하기 힘든 구도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파도라기에는 각도가 부감이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아닌 것 같고, 풀숲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색깔이 빠지고 카메라가 보여주는 부분만 보기 때문에 추측이 어려웠다. 그 지점이 재밌었던 것 같다.
바위와 같이 어딘가에 부딪혀서 튀겨지는 물인가, 거친 풀들이 색을 숨기고 모여있었던 게 아닐까... 여러 지점을 고민할 수 있었다. 얘도 정답은 알 수 없다.
작품들은 대략적으로 사진의 크기가 굉장히 작았고, 화이트박스 수준의 밝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흑백 사진은 잘 보기 어려웠어서 좀 아쉬웠던 것 같고, 창에 붙어있는 사진들은 역광으로 보여서 또 아쉬웠다. 그러나 빛과 어둠을 모두 고려하였을 때, 액자 뒤를 쏘는 역광은 되려 사진에 골몰할 수 있는 무드를 주기도 한다. 위의 사진에서 눈에 띄었던 건 아파트 중간에 한 노인이 계시고, 불긋한 꽃들이 피어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노랗고 낡은 아파트 사이를 지키는 할아버지와 너무나 예쁘게 피어난 다홍색 꽃을 보며, 내가 저 자리에 있었어도 셔터를 눌렀겠다고 생각했다. 지구산책이라는 전시의 이름이 확 와닿게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도우 작가님의 마지막 작품도 야외 공간에서 볼 수 있었다. 다양한 각도로 찍은 각 공간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었다. 흑백 사진들과 대조되도록 민트부터 핑크, 노랑, 그리고 무지개까지 다양한 색의 향현을 보여주었다. 무지개가 찍힌 사진은 작가의 인생 사진으로 남겨도 될 정도로 훌륭한 무드를 주었다. 나는 특히 가운데 아래 있는 할아버지와 강아지가 찍힌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5월에 방문했던 도쿄에서 사진과 비슷한 노부부와 강아지를 만났기 때문인데, 그 친구 이름이 마룽이었나... 마룽이와 함께했던 산책이 떠올랐다.
전시 리뷰 쓰다가 갑자기 마룽이가 너무 보고 싶어져서...(?) 마룽이 저렇게 멀리서(ㅋㅋㅋ) 할아버지랑 나를 번갈아 가면서 지켜보길래 인사했더니 엄청 좋아해줬다. 그때 나도 냅다 셔터를 눌렀는데 같은 마음이었으려나 싶다.
맺음말
지구산책이라는 말에 따라 한 차례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이곳저곳에 대한 호기심도 들었다. LA에 가면 오베이션 몰은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드넓은 프랑스에선 어딜 가야 초록색을 만날 수 있을지도 궁리했고, 아이슬란드에서 정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었고 여기서 보았던 것처럼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다.
전시 운영에서 작가가 가장 고민했을 부분은 역시나 관람에서 어느 정도 깊이의 정보를 관객에게 제공할지 수준을 고려하는 것인 것 같다. 그래서 운영상 아쉬웠던 부분으로 모든 제목이 촬영 장소였고 설명은 없었으며 당연히 도슨트도 따로 없었던 것 같은 약간의 (정보 제공 상의) 불친절함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작은 전시에서 이런 점들을 보완하고자 아티스트 토크를 따로 준비하신 것 같아, 궁금했던 것들은 후기를 찾아보려 한다. 그러나 캡션 크기는 조금 키워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은 있다.😥 그리고 스튜디오의 야외 공간을 활용하고자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자연광을 활용하는 게 가장 어려웠을 것 같다. 흑백 사진들에 효과적이었는지는 의문이 드는 지점 같다.
작품 관람을 마치고 나니, 포스터가 각 작가 별 대표 사진을 배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작가들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들을 내걸었을 것이다. 상단부터 한도우 작가는 이태리의 집 한 켠을, 차미로 작가는 자동차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아라키 작가는 보드를 타는 남성을 찍었다. 각각 대표 사진들은 각자가 보여주려고 했던 전체 사진들의 무드를 대표해 주는 이미지였다. 같은 여행을 다녀와도 각자 보는 시선이 이렇게 다르고, 이를 사진이라는 매개로 표현하려는 포인트조차 모두 달랐다. 이걸 보려고 갔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도우 작가님과 세상을 보는 시야나 감상이 비슷한 것 같아 좋았고, 예술사진이라는 표현으론 아라키 작가님이 좋았으며, 차미로 작가님의 이후 작품이 궁금해졌다. 아마 앞으로도 전시 소식을 기다리지 않을까.
안 그래도 여행 못 가는 시기에 지구산책 잘 다녀왔다... 예쁜 공간에서 예쁜 산책을 다녀온 것 같아 기분도 좋았다. 전시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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