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인가, 불현듯 친구의 인생 영화 3가지를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는 말에 함께 인생 영화 리스트를 주섬주섬 담아보기 시작했다. 친구는 알라딘, 윙카와 같이 음악과 춤이 곁들여진 흥부자형이었고, 나는 그냥 난잡한 취향의 다작러였기 때문에 사실 그 말에 꽤나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영화에 조금은 후한 인심을 가진 편인 듯 하다. 좋은 영화나 작품은 끝도 없이 나오고... 오히려 더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고. 그렇게 인생 영화는 언제나 바뀌어 왔다. 결국 이번에도 그 리스트를 3개 이내로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매년 그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았던 영화가 하나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흥미롭게 보지 못하는 성향이라는 이유 하나로,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시대에 남을 예술가의 작품을 보지 않는다는 건 좀 손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표작부터 몇 가지를 접해보다가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이 영화를 지금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다.

내가 사랑하는 키키!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
각본 | 미야자키 하야오 |
개봉일 | (일본) 1989. 07 (한국) 2007. 11 |
러닝타임 | 102분 |
마녀 배달부 키키

마녀의 피를 잇고 태어난 키키는 '13살이 되던 보름달이 뜬 밤, 마녀가 없는 마을에서 1년을 수행하면 마녀가 될 수 있다'는 전통의 뜻을 따라 마녀가 되기 위한 수행을 시작한다. 키키는 만 13세가 되고, 마녀가 없는 대도시에 도착하였으나 이곳에는 마녀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골 마을에 살아가던 키키가 빗자루와 고양이만 든 채 대도시로 향하게 되고, 여러 주민의 부탁을 들어주며 험난한 견습 마녀의 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 빵집 주인인 오소노를 만나고, 자꾸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키키를 도와주는 오소노 덕분에 하숙할 집을 찾고 마녀의 능력인 빗자루를 타면서 택배 배달을 시작한다. 마녀가 되기 위한 노력과는 달리, 점점 약해져 가는 능력에 좌절감을 느끼던 키키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역경을 극복해 나간다.
서양 어딘가 유럽풍의 동네에서 모두가 동양인의 얼굴을 했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광경도 평범하게 보인다. 그래서 더 신비로워 보이는 키키, 마녀 배달부 키키 속 마을과 대도시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지도 않고, 또 어디인지 알기 어려운 서구적인 느낌만 보인다. 인터뷰 영상에서는 시대 배경을 알 수 없게 하고 여러 가지 도시를 섞는 장난을 쳤다고 한다. 서구권 관객들은 민감하게 볼 수 있겠지만, 자국의 관객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의도했다고. 가상의 배경이기에 더욱 키키의 이야기가 판타지스럽게 느껴지면서, 소위 말하는 마녀의 기존 이미지와 다른 양상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마녀의 이야기
키키는 수습 마녀로서 어엿한 마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스토리라인처럼 이세계 속 마녀는 전혀 위협이 되거나 불운의 아이콘으로 자리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현실의 마녀재판은 몇백 년 전까지도(혹은 현재에도) 벌어진 실제 사건으로, 마녀로 불리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하였고, 이를 구분하는 방법도 처벌하는 방법도 현대에 이르러보면 허무맹랑한 잔혹성을 비추는 비극이었다. 마녀사냥을 통해 혼란의 원인을 차단하고, 집단의 안정성을 위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학살 사건에서, 서구권의 마녀는 결국 불순분자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심지어 '다름'이 없는 대상이 다수였을 것) 실체를 정당하게 의심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으로도 집단의 안정이 도달되었었다.

이러한 서양 문화권의 배경을 한 애니메이션 속 마녀를 어떤 사람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불순분자의 역할로 사회에서 소외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극 속 과거에는 마녀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는데 키키가 주로 활동하는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존재고, 오히려 옛날 문화(사양 사업 같은)로서 이를 지키고 보존하려는 키키의 모습이 강조되는 이야기로 흐른다. 지켜야 하는 문화나 전통으로 자리 잡은 마녀를 어린 소녀가 지키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기존에 알고 있던 슬픈 역사인 마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회가 만들어 낸 악의 존재로서, 시선과 경제적 이득을 취했던 과거, 그때 희생당한 사람들이 정말 마녀라는 이름을 가졌다 한들 단순히 빗자루를 타는 법을 연습하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던 하층민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냥 단순히 사춘기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미야자키의 의도가 더욱 관통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빗자루를 타고 다니고 배달을 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결국 마녀가 된 사람들이 꿈꿨던 운명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 마녀에 대한 관점은 개인적인 사유이며 창작자의 의도와 전혀 관계없음.

처음 키키가 꿈이 어엿한 마녀이면서 그 능력을 지닌 인물임을 알았을 땐 참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사실 마녀재판에 대한 사회적 배경과 더불어 마녀라는 직업(?)이 나타나는 외적 이미지는 나름 뚜렷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핸젤과 그레텔'에 등장하는 남매를 잡아먹으려는 마녀, 영화 '마녀'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호러틱함. 악인의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는 마녀라는 키워드가 키키와 만나면 어처구니없이 귀여워진다. 무시무시한 마녀가 되기 위한 수련, 빗자루가 말을 듣지 않아 속상한 아이, 참으로 기존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또 다른 이미지로는 어느 게임 NPC처럼 조언을 건내주는 마법사 같은 마녀로의 역할도 두드러지는데, 키키가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려져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일본이라는 국가 특성상 귀여운 마녀 혹은 마법소녀라는 유쾌한 이미지로 통해졌을 수도 있겠다.
어른이 되고 싶은 키키
13살의 키키는 마녀가 되기 위한, 결국 어른이 되기 위한 일종의 수업을 시작한다. 배우는 것, 좀 더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쌓는 그녀의 고민거리는 사회초년생들과 많이 닮아있던 것 같다. 마녀가 되기 위한 키키의 노력이나 좋은 직장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우리 마음이나 매한가지일 것. 어른이 되기 위해, 유년을 극복 혹은 자연스럽게 지날 수 있는 우리가 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에는 빗자루가 부러지는 등 고난과 역경이 끊이지 않았지만, 다시 빗자루를 새로 깎아 만드는 키키처럼 우리는 언제나 다시 목표를 향할 수 있다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13살짜리가 무슨 고민이 있어서 이런 표정을 짓나 싶다가도, 사실 키키가 나보다 너무나도 어른이었다고 느낀다.

영화 전반부 자체는 어린 키키의 성장기를 보여주면서도 그 사이의 역경은 나름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에 더 몰입하기 좋은 듯하다. 작화보는 맛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가끔 보는지라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키키는 움직임 하나하나, 색감 하나하나를 꼽아보느라 바빴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마녀 배달부 키키를 약 3번 정도 관람한 것 같다. 학생일 적 처음 봤던 키키와 2019년에 본 키키, 그리고 제일 최근인 2020년도에 본 키키는 많이 달랐다. 어린 시절에는 마냥 귀여운 키키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온갖 낯선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키키에 집중되곤 했다. 그 낯섦을 이겨내려는 키키가 너무 대견해 보인다.
만드는 사람들
키키는 원작 동화가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색부터 모든 창작 작업에 관여하였던 초반부 작품이다. 감독의 나무위키를 보면 재미있는 구간 중 하나가, "그냥 혼자 다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게임이나 공연과 마찬가지로 공동 창작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애니메이션은 많은 분야를 나누어 효율적인 작업 과정을 이룬다. 그러나 감독은 과거부터 직접 콘티, 기획, 연출 등 감독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부분이 미미할 정도로 개입하며 그만큼 그의 개성을 듬뿍 담아낸다. 애니메이션 작업 의도를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구도나 움직임 연출에서 보여주는 투박함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특유의 동화 그림체가 인물을 표현할 때 돋보이는 듯 하고, 이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관객들에게 친근함을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키키는 아무래도 원작이 있어 최대한 메세지나 이야기에서 미야자키의 감성을 덜어냈을 거라 추측하나, 개봉한 지 30년이 넘어가는 작품에서조차 감독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영화라고 하면, 영화도 보기 전 정말 어릴 적부터 마녀 배달부 키키의 OST인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듣고 좋아하였다. 어쩌다 알게 된 음악인지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한창 뉴에이지를 찾아 듣던 시절이라 가사가 없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늘상 플레이리스트에 잔존하고 있었다.(듣는 순간 바닷가이니 파도 조심하시길,,,) 늘상 해보고 싶었던 경험이 타국에 가서 타국 소설책을 읽으며 타국 노래를 듣는 것이었는데, 바로 그 경험을 처음 선사해 준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 대부분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와 함께한 사람을 꼽을 때 항상 미야자키 이후로 거론되는 인물은 히사이시 조일 것이다. 들으면 아는 음악, 들으면 아련해지는 음악... 등은 모두 히사이시 조의 작업이 따랐고 '영화 음악'이라는 장르의 큰 거장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어떤 영화의 OST인지도, 어떤 음악감독의 작품인지도 잘 인지하지 못한 채 들었던 음악이 지금까지도 울림을 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여전히 인생 영화라는 말은 참 어렵다. 이제는 작품의 내용이 뚜렷하게 기억이 안 날 때가 더 많고, 몇 년 전에 언제 본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그 울림이 여전하며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결국 그런 게 인생 영화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뒤로하고도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세상을 떠도는 장면들은 언제봐도 속이 다 시원했고, 바람에 펄럭이는 옷자락과 머리띠가 너무나 귀엽고 따듯했다. 그런 감상만으로도 인생 영화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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