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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무용극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in 2020

곤 gon 2025. 2. 2.

주말 동안 다양한 사건이 있었다. 컴퓨터의 블루스크린 문제로 게임을 못했고, 오랜만에 공연을 보고 왔다. 두 가지 사건이 비극적인 건, 첫 번째는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체도 열어보고 포맷도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못 찾았다는 것과 두 번째는 리뷰를 쓸 만큼 공연이 인상 깊진 못했던 것. 원신 해등절 퀘스트를 아직 마무리하지 못해 초조한 마음(기간은 한참 남았다)과 슬슬 심심해지던 탓, 그리고 아쉬웠던 이번 관람을 뒤로하고자 과거 인상 깊었던 공연의 후기를 가져왔다. 아쉽게도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본 공연까지 이어가진 못했지만, 트라이아웃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를 낼 수 있구나 했던 놀라움을 주었던 공연이다.

 

 

장르 무용극
장소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관람일 2020. 04. 29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민준호X김설진의 작품,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가 우란이상 작품으로 올랐다.

2019년부터 텍스트를 개발하고 여러 차례 워크숍을 거친 후, 2020년 4월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였다. 그야말로 피켓팅이 터졌었다. 안 그래도 인기가 많았을 창작진들의 조합에, 코로나-19 초반기로 30석 정도의 소량 좌석으로 운영되었던 공연이다. 어떻게 표를 잡았는지도 모르겠으나(주변에 본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한껏 기대감을 안은 채로 공연을 관람했다. 치솟은 기대감이 천장을 부셨음에도, 작품까지 하늘을 부숴버린... 인상을 주었던 공연이다.

 

출처: 교보문고

 

감탄사처럼 들리는 제목은 아마도 아름답지 못했던 세상에 살던 사람이 외치는 하나의 포효일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긴 문장의 제목에서 오는 호기심과 어떤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 살아갈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을지가 궁금했었다. 실제 제목은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라는 에세이에 실린 한 문장이다. 정신 의학자였던 빅터 프랭클은 실제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서술하며 극한에 처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던져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라는 말은 우리가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대변해 주기도 한다. 실제 이 말은 빅터 프랭클이 동료들에게 숲의 나무 사이 햇빛을 보게 했고, 온갖 구름과 풍경, 살아 숨 쉬는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 동료들이 마침내 내뱉게 만든 문장이었다. 극한까지 치닫는 현실에서 삶의 의지를 붙여내려 했던 의사의 노력에서 탄생한 문장이었다. 이렇게 작품은 유연 배우가 읽고 있던 책에서 시작되었다.

 

안네 프랑크의 집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만드는 노력을 보여주는 제목 속, 작품의 주인공은 누구라도 모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릴 적부터 필독서로 지정되어 줄글, 만화책, 나중에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했던 기억이 있다. 작품은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를 담았다.

 

 

 

2차 세계대전이 지나고 유대인 학살의 아픔을 간직한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집은 박물관이 되어 가이드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작품은 투어에 함께하는 인물들과 함께 안네의 집을 살펴보며, 무대 위 함께 공존하고 있는 안네의 모습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한다. 안네의 집 하나하나 요소에서 각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안네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여러 스토리가 얽혀있는 형태였다. 안네가 은신해서 살았던 공간 속, 그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우리와 투어에 참여한 배우 관광객들은 함께하는 관광객의 위치였다가, 어느새 안네의 옆에서 그들의 삶에 함께하는 '우리'가 되었다.

 

 

안네가 은신했던 집은 작품에서 나오듯 그냥 살아가는 공간에서 멈추지 않았었다. 언제나 누군가 찾아올지 몰라 두려워 창문을 열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모여 다 같이 외부의 소리에 집중하기도 한다. 삶의 의지를 숨겨놓은 공간에는 그 의지를 꽁꽁 숨기기 어려울 정도로 어린 나이의 안네가 있었다.

 

실제 안네 프랑크의 집은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안네 프랑크 재단이 일기, 사진 등의 자료를 보관해 관리하고 있고 나치 정권의 자료를 전시하는 자료관도 함께 있다. 독일의 유대인 일가에서 태어났던 안네는 이를 피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다른 동료 가족들과 함께 회전식의 책장 문 뒤에서 은신 생활을 시작했다.

 

안네를 찾은 우리

 

갇혀있던 안네가 살던 사각형으로 가득 찬 집은 어떤 프레임으로 보이기도 한다. 창작진들은 각자의 프레임 속에 살아가는 삶을 담고 관객들에게 다양한 삶의 방향성을 물었다. 극 속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어선 것처럼, 마지막에 등장한 설치미술가 김설치씨의 질문은 많은 혼란을 안겨주기도 했다. 김설치씨는 예술은 왜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저렇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왜 사느냐'고 묻던 한 무용수의 말에 당당하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대답할 수 없었던 사람도 공존했다.

 

소수의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에 슬프기도 했던 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는 공연의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러한 아쉬움은 작품에 있어 최고의 칭찬이기도 하다. 이야기 외 작품에 대한 느낌으로는 공간, 연출, 조명, 의상, 배우/무용수의 조화, 움직임, 사운드 등 공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하나 눈에 띄게 인상적이었다. 특히 프레임과 지하실 상황을 표현하려는 사다리 등 공간 연출과 다양하게 등장하는 극적인 사운드들은 작품의 긴장감을 키웠다. 김설진 안무가의 각종 연출된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충격적이었고, 움직임과 더불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트라이아웃 공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본 공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더 진행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후기를 옮겨 국내에서 이런 이야기로 이런 시도를 했던 이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름다운 세상에 아름답지 못한 사연들이 많아서, 공연을 관람했을 당시에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역사 속 세상도 현재의 순간도, 결국 사람으로서 존재하기에 모든 삶이 닮아있는 것 같았다. 닮은 삶을 마주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너무 직설적이었기에,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후기를 남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단편적인 이야기는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아픔의 역사가 되었지만, 그때 안네의 용기와 간절함이 지금까지 울림을 주는 역할을 하여 때로는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며, 후기 끝!

 


 

* 민준호X김설진의 조합은 당해 7월 <지파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 지난 작품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메이킹 영상 바로가기

* 그 외 작품의 비하인드, 크리에이터의 노트는 우란문화재단 SNS에 기록되어 있다.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으니 관심이 있다면 추천한다! 물론 5년 전 작품이라 조금 많이 내려야 할 듯합니다😀

 

사진 출처: 우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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